2024. 11. 17. 04:13ㆍFeng Shui
장풍득수藏風得水,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
오늘은 풍수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풍수는 양택풍수와 음택풍수 나누어집니다. ART MUSEUM 블로그에 글을 꼼꼼히 읽어 보신분 들이라면 어느정도 그 내용에 대충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자면 양택풍수는 현대사회에 일러 인테리어와 접목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알려지게 되었지만 우리의 조상님들의 역사로 올라가 보면 양택풍수는 양반들만의 특권이라하여 민간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널리 애용되지 못했습니다. 음택풍수는 돌아가신 조상의 묘택을 좋은자리에 두어, 살아있는 후손들의 음택발복을 기원하는 것이 랍니다.
그럼 풍수지리 사상이란 무언일까요
말 그대로 바람과 물 그리고 땅의 이치를 바탕으로 한 사상으로 굳이 따진다면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시면 될듯합니다.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약자로 ‘풍수’라는 용어가 시작됐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풍수지리의 핵심은 생기(生氣)의 취득에 있고, 생기를 만드는 기본적인 조건은 바람과 물, 즉 장풍과 득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풍의 ‘풍(風)’자와 득수의 ‘수(水)’자를 취하여 풍수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장풍득수 이론에는 풍수지리의 전체적인 내용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장풍득수라는 말은 풍수지리가 이론적으로 상당히 발달된 시점에서 사용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풍수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존재합니다.
풍수의 긍정적인 예
오래전 부터 도읍을 정하는데와 묘지 선정, 집터 선정, 마을 선정들 대부분 입지와 관련되어 크게 발달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도읍을 정할때 풍수지리 사상이 가장 크게 적용되었다고 봅니다. 한양의 경우 우리 국토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북악산은 주산, 남산은 안산이고, 인왕산은 백호, 낙타산은 청룡에 해당되며 한강은 객수, 청계천은 명당수 등의 완벽한 조건을 바탕으로 바람을 막아주고 물을 얻기 쉬운 자리로 조선시대 우리나라 교통과 정치 경제의 중심지에 딱 맞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고 이 자리를 도읍으로 정하게 한 사상이 풍수지리 사상입니다. 현대에서도 보면 조상의 묘자리가 명당이면 후손이 번창한다. 터 가 좋아 장사가 잘된다, 이런식의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풍수의 부정적인 예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은 대부분 막힌 지형입니다. 전쟁시 이러한 지형은 고립될 위험이 있다는게 부정적인 예의 대표로 보여집니다.
또, 묘지 선정에 이러한 사상을 내세워 사람이 살아갈 만한 좋은 곳에는 대부분 묘지가 위치해 있어 산 사람이 살아가는데 명당은 존재하지않기에 부정적인 사상으로 인식 되기도 합니다. 현대에 일러서는 미신으로 취부하고 난이렇게 했는데도 아무 효과가 없어 난 이런건 믿지않아 이런 인식이 부정적인 부분 일것 입니다.
풍수지리 風水地理
만물은 '기'로 이루어졌으며 만물 중의 하나인 땅도 '지기'로 이루어진 것으로. 지기에 대해 음양·오행·주역의 논리로 체계화한 것이 풍수지리이며. 현존하는 최고의 풍수지리서로는 동진의 곽박이 지은 〈금양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풍수지리는 땅이 살아야 사람도 살 수 있다는 논리이며 이 양자의 존속을 조화와 균형에서 찾고 있습니다. 따라서 음양의 상보적인 이해와 오행의 순환적 변화의 원리가 토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간접적인 지기에 대한 대표적인 접근은 땅의 모양을 눈으로 보고 파악하는 형국론 이며. 매화낙지형·연화부수형·노서하전형 등 땅을 동물·식물·사람 등의 모양으로 규정하고 땅에 비유된 동식물의 특징을 가지고 생기가 모이는 혈을 찾는다. 길지를 찾는 보다 체계적인 방법으로는 간룡법·장풍법·득수법·좌향론·정혈법 등이 있습니다.
현존하는 풍수지리서 중에서 최고의 것으로 말하는 동진의 곽박이 지은 〈금양경〉은 한반도에서도 일찍부터 땅에 대한 기의 인식이 발달했으나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학문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다고 볼수있습니다.
그러나 땅에 대한 독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삼국시대 이후 중국으로부터 풍수지리가 전래된 후 중국과는 다른 우리식의 풍수지리를 발전 시켰습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우리의 독자적 풍수서가 저작 되기도 했고.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 가운데 동외산선문의 도선대사이라는 선승에 의해 한반도 풍수지리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 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풍수가 학문이나 체계적으로 인식 사용된건 이때부터라 할수있습니다. 도선대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비보사상으로서 중국과 다른 한반도 풍수지리의 특성을 보이는것입니다.
즉 주어진 땅의 지기에 의지에서 살 뿐만 아니라 나무를 심거나 가산을 만들고 사찰과 탑 등의 입지를 통해 적극적으로 땅의 지기를 인간의 삶과 조화되도록 하는 것이 비보로서 한반도 풍수지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 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비보문제를 전담하는 산천비보도감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이러한 비보와 같은 땅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는 고려시대 풍수지리에서 지기쇠왕과 그에 따른 국도의 천도문제를 제기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의 풍수지리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시작되었고. 고려의 도읍인 개성을 벗어나기 위해 계룡산·모악산 등과의 비교를 통해 결국 한양이 도읍지로 선정되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건국 후에 새로운 도읍 선택에 골몰한 것은 고려시대에 문종·숙종·예종·공민왕 등이 모두 풍수지리 논리를 고려의 개혁에 이용하려 했던 전통을 이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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